대화로만 완성하는 프리미엄 자서전 서비스,
친구에게 말하듯이, 자녀에게 전하듯이.
이 질문하고, 연결하고, 엮어드립니다.
전문 대필 작가와 함께 빚어낸 나만의 AI 인터뷰어가, 흩어진 이야기를 솜씨 있게 꺼내어 드립니다. 흘리듯 남긴 한마디까지 기억해 두었다가, 잊고 지낸 순간마저 다시 불러냅니다.
어떻게 알아듣는지 보기음… 그 동네가 골목이 참 좁았어. 학교 파하면 뭐, 가방 던져놓고 애들이랑 구슬치기하고. 저녁 되면 그…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골목에 쫙 퍼지고 그랬지.
좁고도 길던 그 골목을, 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걸어 들어간다. 학교가 파하면 가방은 마루에 내던져진 채였고, 구슬이 흙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이 해를 붙잡아 두었다. 이윽고 어스름이 내리면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골목을 천천히 메웠고, 그 온기가 곧 집으로 돌아오라는 신호였다.
실제로 만든 책의 1장을 한 줄도 빼지 않고 실었습니다. 전부 대화에서 나온 말이고, 지어낸 사건은 없습니다.
우리 집이 커튼집이 된 건 나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여섯 살짜리 내가 한글을 너무 빨리 뗐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아파트를 정리하고 가겟방으로 내려온 건 원래 비디오가게를 하려고였다. 그때만 해도 비디오가게가 참 잘되던 시절이었다. 골목마다 대여점이 하나씩 있었고, 사람들은 주말이면 테이프를 두세 개씩 빌려 갔다. 그리고 여섯 살이면 한창 한글을 배울 나이다. 가게에서 사는 아이한테 교재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운 비디오테이프마다 등짝에 제목이 붙어 있었으니까. 나는 그걸 열심히 소리 내어 읽고 다녔다고 한다. 처음엔 더듬더듬, 갈수록 술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한글 연습하듯 또박또박 읽은 제목이 하필 ‘애마부인’이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안 되겠다, 비디오가게 접어야겠다. 우리 아들 교육을 위해서.
그렇게 비디오가게가 사라진 자리에 커튼집이 들어섰다. 이 이야기는 커서 전해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면서도 어딘가 짠하다. 아들이 뭘 너무 빨리 배우는 바람에 부모 생계가 통째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내가 뭔가를 빨리 배워서 벌어진 첫 사건이었다. 물론 마지막은 아니었고.
그 집 구조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려진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원단이 걸린 가게가 나오고, 그 안쪽에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 그 방을 지나야 겨우 내 작은 방이 나왔다. 이사 올 때 아파트에서 쓰던 침대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자다가 하도 굴러떨어져 우는 통에 결국 침대는 없어졌다. 방엔 가끔 귀뚜라미가 들어왔다. 아기 눈높이까지 튀어 오르는 귀뚜라미가 어찌나 무서웠는지,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게 된 게 아마 그때부터일 것이다. 인천 도화동, 낮은 아파트와 빌라 사이 골목.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그 커튼집에서 자랐다.
식구는 셋이었다. 엄마, 아빠, 나.
미싱 소리는 늘 등 뒤에서 났다.
가게 뒤편에 오버로크 미싱이 한 대 있었는데, 엄마는 목디스크 때문에 목 보호대를 찬 채 거기 앉아 미싱을 돌렸다. 그 시절 엄마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대개 그 뒷모습이다. 보호대에 턱을 괸 채 돌아보지 않고 일하던 등. 재봉틀 바늘이 원단을 물고 나가는 동안, 나는 그 등 뒤의 골목에서 컸다.
골목은 작아도 있을 건 다 있었다. 같은 건물 1층에 세탁소가 있었는데, 엄마가 자리를 비울 때면 나는 그 집에 맡겨지곤 했다. 세탁소 아저씨 아줌마가 나를 참 예뻐해 주셨다. 골목 하나 건너에는 동네 슈퍼. 두부랑 콩나물을 검정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 팔던 가게였다. 아빠 담배 심부름을 하느라 나는 그 슈퍼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집 앞 주택에는 상우라는 형이 살았다. 이상하게 그 형 이름은 아직도 안 잊힌다.
그리고 재롱이가 있었다. 우리 집 치와와. 2000년대 초반이라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다들 잘 모르던 때였고, 우리도 그냥 키웠다. 그런데 재롱이는 저 혼자 알아서 컸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가게 미닫이문을 발톱으로 긁었다. 문을 열어주면 혼자 나가서 볼일을 보고, 다 보면 돌아와 또 문을 긁었다. 동네에서 유명한 개였다. 재롱이는 방에는 못 올라오고 가게에서만 지냈다. 그러니까 걔는 커튼집의 개, 원단과 미싱 소리 사이에서 사는 개였다.
골목에서는 공을 찼고, 인라인을 탔고, 비비탄 총싸움을 했다. 아파트 옆에 물탱크가 든 야트막한 턱이 있어서 그 위에서 딱지치기며 학종이 따먹기를 했다. 빌라 담을 넘어 옆 동네로 원정을 가는 것도 일상이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하루가 없는 건, 아마 매일이 비슷하게 괜찮았기 때문일 거다.
그 골목의 낮에 아빠는 없었다.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왔으니까. 나가는 모습이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하나는 안다. 아빠는 나가기 전에 꼭 잠든 내 뺨에 뽀뽀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갔다. 나도 잠결에 뭐라고 인사를 했던 것 같다. 들어올 때는 대개 내가 잠든 뒤였다. 그러니까 그 시절 아빠를 나는 거의 잠결에만 만난 셈인데, 이상하게 그 온기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눈 뜨고 만난 수많은 장면은 다 흩어졌는데, 눈 감고 받은 인사가 남았다.
주말이면 세 식구가 인천을 벗어나 서울 오류동으로 갔다.
거기엔 할아버지가 아빠 4형제와 손수 지은 2층 단독주택이 있었다. 2층과 지하는 세를 주고, 1층에 할아버지와 큰집이 살았다. 마당에는 밤나무, 보리수, 살구나무가 있었고, 울타리에는 여름마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엄마는 지금도 그 집이 참 예뻤다고 한다. 친가에서 외할머니 댁까지는 걸어서 20초. 엄마도 아빠도 그 동네에서 자랐고, 두 분이 만난 오류동 장로교회도 거기 있었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오류동은 내 제2의 고향이다.
무엇보다 거기엔 사촌들이 있었다. 누나 둘은 88년생, 나까지 남자 셋은 90년생. 위아래로 몇 달 차이도 안 나는 사촌 다섯이 주말마다 그 집에 모였다. 명절이면 엄마들은 부엌에 있고, 우리는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아빠들은 마당에 금을 그어놓고 우리랑 동전 던지기를 했고, 쥐불놀이도 했다. 나는 겁이 많아서 밤 골목을 무서워했는데, 지하 셋방이 비어 캄캄할 때면 아빠들이랑 사촌형이 거기 숨어 있다가 나를 놀래켰다. 그럼 나는 기겁해서 울면서 뛰어 들어갔다. 그 동네 골목마다 우리 가족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왕국에서 나는 셈을 하나 배웠다.
정민이 형네는 어딘가 늘 넉넉해 보였다. 형네 집엔 마리오 게임기 같은 좋은 물건이 항상 있었다. 은지 누나가 컨버스를 신고 온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한테는 브랜드 신발이라는 게 없던 때라 "와, 누나 신발 진짜 예쁘다. 어디서 얼마 주고 샀어?" 하고 물었다. 누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거 얼마 안 해. 한 7만 원밖에 안 해.
7만 원밖에.
우리 집에서 7만 원은 큰돈이었다. 부러웠던 건 신발이 아니었다. 7만 원 뒤에 ‘밖에’를 붙일 수 있다는 것.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걸어서 몇 분 거리 우리시장에는 오락실이 있었는데, 은지 누나는 펌프를 잘 췄다. 누나가 발판 위에서 스텝을 밟는 동안 나는 동전도 안 넣고 뒤에 서서 혼자 발을 맞췄다. 같이 하자는 사람도, 비켜준 사람도 없었다. 그냥 각자 즐거웠고, 나는 내 몫의 재미를 공짜 스텝으로 챙겼다.
집에 있는 내 로봇은 친구네 것과 같은 로봇인데도 작았고, 변신도 몇 개 안 됐다. 사달라고 했을 때 미안해하던 엄마 얼굴, 아니면 안 된다는 대답을 나는 몇 번쯤 겪었을 것이다. 아, 돈 때문에 안 되는 게 많구나. 그 셈을 나는 오류동과 도화동을 오가며 익혔다. 그래도 과학상자만은 좋아했다. 볼트 너트를 끼우고 모터를 다는,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장난감. 비싼 장난감 세계에 못 들어가는 아이는 만드는 세계에서 놀았다.
엄마의 교육에는 철칙이 있었다. 해보고 싶다고 하면 뭐든 시작하게 해준다. 대신, 한번 시작하면 절대 못 그만둔다.
형편을 생각하면 이상한 목록이었다. 미술학원, 컴퓨터학원, 태권도, 피아노. 아빠가 잘못 선 빚 때문에 돈을 날리고,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하던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초등학교 3학년짜리 방에 200만 원짜리 컴퓨터가 들어왔다. 그 시절 200만 원. 그 컴퓨터로 대단한 걸 하지는 못했다. 그냥 뭔가 있어 보여서 이것저것 만져봤을 뿐이다. 부모님이 무리하고 있다는 건 그때는 몰랐다. 다양한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그 무리의 이름이었다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피아노 학원은 5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녔다. 내 인생에서 제일 오래 다닌 학원이다. 처음엔 피아노만 가르치다가 나중엔 수학이며 영어까지 가르치던 그 학원은, 요즘 말로 하면 스파르타식이었다. 틀리면 맞았다. 단어를 못 외우면 맞고, 건반을 틀려도 맞았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은 해봤지만 철칙은 철칙이었다. 엄마 눈에는 아이를 빡세게 잘 가르치는 학원이었고, 일하는 엄마한테는 학교 끝난 나를 맡겨둘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저녁 7시까지 나는 거기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포기했다. 아, 여기는 그냥 다녀야 되는 데구나. 그 학원은 이상한 데였다. 놀이터이기도 했고, 무서운 데이기도 했다. 나는 거기서 눈치껏 해야 할 만큼만 하는 법을 배웠다. 재미있어서 배우는 게 아니라 안 맞으려고 배우는 법을. 나중에 나는 어디에도 매이고 싶지 않다는 갈망을 평생의 큰 숙제처럼 갖게 되는데, 그 갈망이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물으면 저녁 7시의 그 학원이라고 답할 것 같다.
집이라고 마냥 편하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는 내 앞에서는 절대 안 싸운다는 주의였다. 그런데 대리운전까지 뛰던 아빠가 술까지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그 원칙이 무너졌다. 엄마가 아빠한테 크게 화를 내던 밤이 기억난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그리고 엄마가 무서웠다. 지금 와서 보면 엄마는 기분의 부침이 있는 사람이었고, 당신 스스로도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빠가 늘 밖에 있었으니 나를 혼자 건사해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어른이 된 나는 그걸 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해 대신 다른 걸 했다. 엄마 기분을 살피는 것. 엄마 눈에 예뻐 보이는 것.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 일에 능숙해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엄마 지갑에 손을 댔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갖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고, 돈 때문에 안 되는 게 많다는 셈을 이미 익힌 아이였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빼낸 돈은 내 방 서랍에 숨겨뒀다.
어느 날 보니 그 서랍이 열린 채로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가 봤구나. 그런데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열린 서랍 앞에서 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을 것이다. 벌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알 수 없는 일인데, 또 엄마 지갑에 손을 댔다.
그리고 걸렸다.
엄마는 크게 화를 냈다. 가위를 가져와서 내 손을 잘라버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발가벗겨서 집 뒷문 밖에 세워뒀다. 골목 뒤편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나를 못 봤다. 그런데도 너무 수치스러웠다.
이 장면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어른이 되어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자꾸 이 뒷문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무도 안 봤는데 수치스러웠다는 것.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수치라는 건 원래 남의 시선에서 오는 감정인데, 그날 뒷문 밖에는 시선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 시선은 이미 내 안에 있었던 거다. 여섯 살에 비디오 제목을 읽어 엄마를 놀라게 했던 아이는, 아홉 살인가 열 살쯤엔 자기를 지켜보는 눈을 제 몸속에 들여놓았다. 처음엔 엄마의 눈, 나중엔 누구의 것도 아닌 눈. 그 눈은 이후로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짚어둘 게 있다. 그 시절 엄마에게는 새벽마다 잠든 아들에게 뽀뽀하고 나가는 남편과, 목 보호대를 차고 돌려야 하는 미싱과, 혼자 키우다시피 하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 교육 때문에 잘되던 가게를 접은 사람이고, 그 아들에게 200만 원짜리 컴퓨터를 사준 사람이다. 사랑이 없어서 생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다만 사랑과 무서움이 한 사람에게서 같이 올 때, 아이는 그 사랑을 의심하는 대신 자기를 뜯어고치는 쪽을 고른다. 그날 뒷문에서 내가 배운 게 그거였다.
학교에서 나는 공부 잘하는 애였다. 그런데 그게 문제이기도 했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내가 돋보일 수 있는 건 공부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아는 걸 말했다. 나 이거 알아. 저것도 알아. 시험 잘 본 걸 자랑하고, 아는 게 나오면 안다고 말하고. 그게 버릇이 됐고, 5학년 6학년쯤 돼서 애들 머리가 굵어지고 저희끼리 서열 비슷한 게 생길 무렵, 학교에는 어떤 소문이 완성돼 있었다. 쟤는 잘난 척한다.
나는 진짜로 놀랐다. 아, 이게 잘난 척이구나. 나한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말버릇이 남들 눈엔 재수 없는 짓이었다는 걸 안 순간, 몸속의 그 눈이 다시 켜졌다. 나는 아는 걸 말하지 않는 연습을 시작했다.
단속할 게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여자애들이랑 노는 게 편한 아이였다. 아빠는 늘 바빴고 엄마랑만 시간을 보냈으니, 여자들의 말이 나한테 더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종이접기, 실뜨기, 공기놀이, 편지 교환. 오류동에서도 정민이 형이나 도현이보다 사촌 누나들이랑 노는 게 더 좋았다. 피시방에서 애들이 게임 실력을 겨루는 동안 나는 버디버디랑 싸이월드가 더 재밌었다.
그런데 남자애들 사이에서 내 평판은 ‘친하긴 한데 여자 같은 애’였다. 나는 남잔데. 그게 속상해서, 여자애들이랑 공기놀이하고 싶은 날에도 괜히 남자애들을 따라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했다. 여자 같아 보이는 몸짓을 줄이려고 애썼고, 더 남자다워 보이려고 애썼다. 태권도 학원까지 다니는 애가 그랬다. 단속 목록에는 이제 두 줄이 나란히 적혔다. 아는 척하지 말 것. 여자 같아 보이지 말 것.
태호라는 친구가 있었다. 같이 교회를 다녔고, 걔네 집에 가서 게임도 하고 장난전화도 치면서 놀던, 나는 친구라고 믿었던 애였다. 그런데 걔는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걔는 싸움을 잘했고, 나는 못했다. 애들이 다 보는 데서 말다툼 끝에 걔가 나를 때린 날, 나는 아프다기보다 얼떨떨했던 것 같다. 얘랑 나는 친한데. 그 뒤로도 우리는 잘 지냈다가, 괴롭힘당했다가 했다. 친구인데 괴롭히는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는 몰랐다.
6학년 때 나는 자전거로 학교를 다녔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나와 보니, 누가 내 자전거 안장에 침을 뱉어놨다.
누구 짓인지 알 것 같았다. 증거는 없었다. 그냥 알 것 같았다. 그 안장 앞에 서 있던 내 마음이 어땠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남은 건 장면뿐이다. 묶어놓은 자전거, 안장 위의 침, 그 앞에 서 있는 열두 살. 지금의 나는 그 일을 엄청난 상처였다고 부풀리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런 일들이 있었다. 다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목록의 글씨는 조금씩 진해졌다. 미움받지 않게, 놀림받지 않게, 있는 그대로의 나 말고 무사히 통과되는 나를 내보낼 것.
학년이 올라가면서 태호한테는 남자애다운 거친 기운이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쪽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싸움도 절교도 없었다. 그냥 각자의 평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6학년 때 인천 과학영재반에 들어갔다.
버스로 30분을 가야 하는 다른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했다. 학교에서 안 해보던 과학 실험은 재밌었다. 그런데 수학 시간이 되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영재 수업이라는 게 딱히 정해진 과정이 있던 게 아니라, 선생님이 그냥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가져다 가르쳤던 것 같다. 그런데 거기 애들은 다들 잘사는 집 애들이라,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와 있었다. 척척 알아듣고 척척 풀었다. 중학교 과정은 구경도 못 해본 나는 그 사이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영재가 아닌가.
7만 원짜리 컨버스의 셈이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이번에 비교당하는 건 신발이 아니라 머릿속이었다.
그런데 6학년 담임 선생님이 나를 예뻐하셨다. 한정우 선생님. 성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선생님 수업은 달랐다. 팀을 짜서 애들 앞에서 공연을 시키고, 장기자랑을 시키고, 내주는 문제도 이런 식이었다.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면, 뛰는 게 덜 젖을까, 걷는 게 덜 젖을까.
나는 그런 질문 앞에서 신이 나는 아이였다. 답이 교과서에 없는 질문, 학원에서 미리 사 올 수 없는 질문. 그 앞에서는 잘사는 집 애들과 나 사이의 격차가 사라졌다. 컴퓨터에, 마술에, 만들기에, 노래에까지 기웃거리던 잡식성 머리가 거기서는 오히려 무기였다. 선생님은 아마 그런 순간의 나를 보고 계셨던 것 같다.
6학년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아이들 한 명 한 명한테 한마디씩 해주는 자리가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애들이 다 있는 데서 말했다.
"재현이는 천재야."
어리둥절했다. 잘난 척이 될까 봐 아는 것도 말 안 하는 연습을 하던 애한테, 어른이, 그것도 애들 다 있는 데서 천재라는 말을 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내가 뭐의 천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선생님, 제가 뭘 잘해요?
선생님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건 네가 인생을 살면서 알아봐."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는 커튼집을 떠났다. 주안역 앞에 있는 작은 5층짜리 아파트였다.
가게가 딸리지 않은 집. 미닫이문 대신 현관문이 있고, 내 방에 가려고 부모님 방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집. 그 이사로 내 어린 시절의 지도는 통째로 접혔다. 원단이 걸려 있던 가게, 목 보호대를 차고 미싱을 돌리던 엄마의 등, 미닫이문을 긁던 재롱이 발톱 소리, 검정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두부, 세탁소의 온기, 물탱크 턱 위의 딱지들. 여섯 살에 비디오 제목을 읽어서 그 집의 운명을 바꿔놓은 아이는, 열세 살에 그 집을 떠났다.
떠나던 날은 기억에 없다. 어린 날의 이사가 대개 그렇듯, 나는 그게 뭘 닫는 일인지도 모른 채 새집 냄새에 들떠 있었을 것이다. 대신 그 골목이 나한테 쥐여 보낸 것들은 갈수록 또렷해진다. 뭐든 빨리 배우는 머리. 돈의 셈. 몸속에 들여놓은 눈. 매이고 싶지 않다는 갈망. 그리고 답이 미뤄진 문장 하나. 네가 뭐의 천재인지는 살면서 알아봐.
30대 후반이 된 지금도 그 문장은 가끔 나를 찾아온다. 나는 아기 때 유난히 많이 울던 아이였다고 한다. 몇 달 차이 안 나는 정민이, 도현이랑 나란히 눕혀놓고 봐도 티가 날 만큼. 할아버지가 엄마한테 얘는 왜 이렇게 우냐고 했을 정도로. 최근에야 알았다. 감각이 예민한 아기들이 그렇게 운다는 걸.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을 처리하느라 머리가 빨리 발달하고, 그게 새로운 걸 빨리 배우는 힘이 된다는 걸. 그 예민함 때문에 왜 힘든지도 모르고 힘들었던 날이 많았지만, 여섯 살에 비디오가게 하나를 접게 만든 것도, 과학상자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도, 비 오는 날 질문에 신이 났던 것도, 어쩌면 전부 한 재능의 다른 얼굴이었는지 모른다.
선생님, 저는 아직 그 답을 다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답을 찾는 데 인생이 걸린다던 선생님 말이 맞았다고. 이 책의 남은 장들은, 말하자면 그 답을 찾아 헤맨 기록이다.
전문 작가가 검수하기 전, AI를 활용해 작성한 초안입니다. 화자 동의를 받아 이름만 바꾸어 공개합니다.
그러고 보니 여전히 몰랐다.
아빠의 첫사랑도 엄마의 스무살도.
부모님의 사진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드립니다. 책장 곳곳의 QR을 찍으면, 그 대목을 말하던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옵니다.
새로 설치할 것도, 배울 것도 없어요.
말씀하시고, 다 하셨으면 큰 버튼 하나만 누르세요. 받아쓰기도 정리도 저희가 합니다.
무슨 말을 할지 몰라도 괜찮아요. 구체적인 것부터 여쭙고, 더 깊이 들어갑니다.
다시 오시면 어디까지 말씀하셨는지 기억한 채로, 그 다음을 여쭙습니다.
구매 직후 정성스럽게 포장한 사용가이드와, 받으시는 분만을 위한 자서전 표지 초안을 보내드립니다. 받는 순간부터 인터뷰 진행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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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신에 형제들이 함께 만들었어요. 완성된 책을 펼치시더니, 한참을 말없이 우셨습니다."
좋은 자서전은 좋은 인터뷰어에게서 나옵니다. 사춘은 인터뷰어가 하는 일을 세 가지 기술로 나눠 만들었습니다.
나눈 이야기를 시점 · 일화 · 의미 세 축으로 정리해 인생 바이블로 쌓습니다. 잊지 않고, 누가 누군지 섞이지 않습니다.
바이블을 읽고 이 분에게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을 정합니다. 했던 질문은 다시 하지 않고, 빈틈을 찾아 파고듭니다.
문장보다 구성이 먼저입니다. 챕터의 흐름과 일화 배치를 설계한 뒤에 문장을 씁니다. 그래서 소설처럼 읽힙니다.
사춘은 대화하는 동안 인생 바이블을 쌓고(생애 색인), 그 바이블을 읽어 다음 질문을 정하고(맥락 질문), 쌓인 장면을 한 권의 흐름으로 엮습니다(서사 구성). 맥락을 잃는 대화도, 뒤죽박죽인 정리도 이 구조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시대를 넘나들어도 각 사건을 연표의 제자리에 놓습니다.
스치듯 나온 이야기를 장면이 완성될 때까지 추적해 되묻습니다.
떨어져 있는 사건 사이의 연결을 찾아 묻습니다.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묻습니다.
호칭이 달라져도 같은 사람으로 — 누가 누군지 섞이지 않습니다.
등장인물과 그 관계를 구조로 축적합니다.
말한 순서가 아니라, 살아온 순서로 정리됩니다.
한 번 들은 이야기는 다시 묻지 않고, 이어서 묻습니다.
열 시간의 대화 동안 바이블은 계속 자랍니다.
그래서 300번째 질문이 첫 번째 질문보다 깊습니다.
좋은 자서전은 문장보다 구성이 먼저입니다. 쓰기 전에 인생 바이블을 펼쳐, 어떻게 이야기할지부터 설계합니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을 먼저 설계합니다. 책의 뼈대가 여기서 정해집니다.
어떤 일화를 어느 챕터에, 어떤 비중으로 놓을지 정합니다.
인물이 언제 처음 등장해, 어떻게 소개될지 설계합니다.
시간순으로 흐를 곳과 회상으로 교차할 곳을 정합니다.
설계도를 따라 쓰되, 내용과 목소리는 녹취록 원문에서만 가져옵니다.
입말의 결을 지키면서, 읽히는 문장으로 다듬습니다.
AI 검수를 거친 뒤, 전문 작가가 마지막으로 손질합니다.
사람이 마지막에 손봅니다1회 결제 · 구독 아님 · 나중에 더해지는 비용 없음
이야기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 전체 기록을 언제든 내려받을 수 있고, 실물 책은 서비스보다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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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자서전이냐" — 대부분 그렇게 시작하세요. 그러다 막상 여쭤보면 이야기가 쌓입니다. 부담 없는 첫 대화부터 천천히 시작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는 언제든 건너뛰거나 지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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